사도행전 7장 54절-8장8절 “교회의 박해, 선교의 확장” / 찬2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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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그리스도 되심을 증언하는 스데반마저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인을 매수, 스데반을 거짓 모함하여 산헤드린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산헤드린 법정은 유대교 최고 의결기구로,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죽일 것을 결의한 바로 그 법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유대교 최고 지도자들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은 그들이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고, 무엇을 그릇 행하여 왔는지를 거침없이 지적하고 질타했습니다.
스데반은 영적으로 눈먼 유대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유대인들로서는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며 주님께로 나아갈 결정적인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데반의 진술에 분기탱천하여 짐승처럼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릇된 자신을 버리고 주님께 나아가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도리어 자신들의 이권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 자신들에게 회귀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죽인 그들이 짐승처럼 이를 갈았다는 것은 스데반을 죽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다면 스데반은 그 순간이야말로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기에게 되돌아가 자기 안일을 도모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 위급한 순간에도 자신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순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원한 생명의 비상구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이 마지막 기회도 붙들지 못하는 유대인들입니다.
사도행전 7:57–58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짐승처럼 큰 소리를 지르며 일제히 달려들어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고 갔습니다. 신성모독죄로 돌로 쳐 죽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죄인을 처형할 때, 반드시 죄인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죄인의 부정으로부터 예루살렘성의 거룩함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도 예루살렘성 밖 골고다에서 못박아 죽였고, 스데반도 성 밖으로 끌고 간 것입니다.
율법의 해석서인 《미쉬나Mishinah》는 죄인을 돌로 쳐 죽이는 방법을 상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증인이 왼손으로 죄인의 뒷머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죄인의 머리를 돌로 쳐서 쓰러트리면, 두 번째 증인이 쓰러진 죄인의 가슴을 돌로 칩니다. 그다음으로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죄인을 향해 일제히 돌을 던집니다. 결국 죄인은 날아오는 돌 세례 앞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처참하게 죽고 맙니다. 스데반 역시 이렇게 처형되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목격한 것은 사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죽으면서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철회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영혼을 맡기는 스데반의 최후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사울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이 부정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누군가가 그렇듯 장렬하게 죽으면서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킨다는 것은, 사울로서는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8장 1절과 3절의 증언처럼, 사울이 유대교 열혈 신봉자로서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고 관성의 법칙에 따라 그리스도인을 계속 핍박했을망정, 스데반의 순교 모습은 사울의 가슴에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영상으로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길 위에서, 분명히 일행과 함께 있었음에도 오직 사울 홀로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회심하는 결정적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데반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 가운데 유독 사울의 이름만 언급한 사도행전 7장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궁극적 메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주님을 만나기도 전에, 아니 그가 주님을 대적하던 그때에, 성령님께서는 이미 그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시고 그를 위해 치밀하게 역사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주일은 2천 년 전 초대교회에 임하신 성령님을 기리는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그때 강림하신 성령님께서는 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바로 우리 속에 임해 계십니다. 그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이 자리에 그리스도인으로 앉아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성령님께서 사울을 위해 그렇게 하셨듯이,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알기도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인생 길목에 수많은 바나바들을 예비해 주셨고, 우리를 이 자리로 불러 주시기 위해 우리 삶 속에 수많은 사건들을 연출해 주셨습니다. 그러지 않으셨던들, 우리가 이 시간 그리스도인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턱이 없습니다.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스데반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의 영원한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본문 55절에 의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령님의 조명 아래에서 성령님의 관점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님의 관점에서 볼 때 세상의 성공은 성공이 아니요, 세상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며, 육체의 죽음은 끝이 아님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참수형을 당한 사도 바울에 의해 로마제국이 새로워졌던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사도행전 7:55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세상이 성공이라 하는 것에 속지 마십시다. 세상이 실패라고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성령강림 주일을 맞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에 대해 깨어 있는 사람이 되십시다. 성령님의 조명 아래에서 성령님의 관점으로 살아가십시다. 그때 우리의 삶은 결코 실패가 없는, 영원한 신비의 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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